沉醉在民謠中的韓國孩子們

字號:

에야~ 디야~ 소리에 빠진 아이들
    우리 것이 좋아요
    고운 한복이 잘 어울리는 다훈이는 8세 때부터 국악 교육을 받았다. 강령 탈춤과 장구를 익히다 요즘은 토요일마다 서도소리를 배운다. 중학교 1학년생인 다훈이의 누나 은지 양도 6년간 국악을 배웠다.
    누나가 먼저 국악을 하고 제가 나중에 배웠는데 더 잘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장구는 잘 치고, 단소는 조금 불어요. 그래도 학교에서는 제일 잘 분대요.
    다훈이의 강령 탈춤은 수준급이다. 그래서 곧잘 어른들과 함께 공연 무대에 선다.
    다훈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서양 음악을 먼저 접했다. 특이한 것은 나중에 배운 국악에 훨씬 흥미를 느낀다는 점.
    국악과 서양 음악은 달라요. 국악에서는 우리 것의 멋과 여유를 느낄 수 있어요. 요즘은 서도소리가 정말 좋아요. 서도소리는 빠르고 높고 경쾌해 전라도 지방의 소리와도 달라요.
    어린이 국악 교육은 어떻게?
    전문가들은 유아기 국악 교육은 우리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5, 6세에는 놀이 형태로 율동과 호흡, 말과 몸의 장단, 국악 동요 등을 익히는 것이 좋다. 이 시기가 지나면 가벼운 소고나 장구 등의 악기를 다루게 한다.
    명지대 사회교육원 정성자(국악과) 교수는 어린 시절 접하는 국악은 악기와 춤, 소리 등을 따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종합예술 형태로 한꺼번에 습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제대로 국악 교육을 받으면 몇 개 악기에 치중하는 서양 음악 교육에 비해 정서적, 음악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초기에 접하는 국악기는 소고나 장구, 북 등 타악기가 좋다. 타악기는 리듬감을 익히기에 제격이다. 특히 양손을 쓰는 장구는 두뇌의 균형 잡힌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단국대 서한범(국악과) 교수는 국악 영재가 아니라도 초등학교 때 판소리를 배우면 성량이 커지고 부정확한 발음을 교정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인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다훈이가 배운 것은 국악만이 아니다.
    예전엔 밥 먹으면서 막 뛰어다녔죠. 한 숟가락 먹고 사라지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고 잘 참아요.(어머니 구연지 씨45)
    아이는 국악과 만나면서 훨씬 의젓해졌다. 구 씨는 아이가 차분해지고 자신감도 커졌다며 어떤 때는 벌써 철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예절도 바르다고 말했다.
    생활습관도 많이 바뀌었다. TV 시청과 컴퓨터 게임 시간이 크게 줄어든 대신 누나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이 늘었다. 좋아하는 게임은 휴대용 저장장치에 담아 짬짬이 즐긴다.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다훈이의 소리 선생님인 박 씨는 서도소리에 미친 사람으로 불린다.
    1983년 군부대 취사병이었던 그는 부대에서 쓸 떡을 구하러 서울에 나왔다가 잠실 석촌호수에서 운명의 소리를 들었다. 평양 권번의 마지막 기생세대로 인간문화재였던 김정연 선생(1987년 작고)의 수심가였다.
    키가 150cm도 안 되는 할머니가 소리를 하는데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내 운명은 정해졌지요.
    다음 해에 제대한 그는 병마에 시달리는 김 선생을 찾아 소리를 배우며 스승의 말년을 지켰다. 가례헌에는 은사의 유품이 전시된 금홍관(김정연 선생의 기명에서 따온 명칭)과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이은관(91) 옹을 위한 방이 있다.
    소리요? 다 팔자고 운명이죠. 김 선생님이 작고한 지 올해로 20년이 됩니다. 그때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그 소리를 찾아갈 겁니다.
    그의 어린 제자가 배뱅이굿의 한 대목을 불렀다.
    서산낙조 떨어지는 해는 내일 아침이면은 다시 돋건마는 황천길이 얼마나 먼지 한번 가면은 다시 못 오누나 에.
    서도소리 특유의 고음이 아이의 목소리에 섞여 좁은 공간에 메아리친다. 열한 살 다훈이가 배뱅이의 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소리는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還是更喜歡我們的傳統(tǒng)音樂”
    被美麗的韓服襯托得分外精神的多勛(音譯)從8歲開始接受韓國國樂教育。他原本在學(xué)習(xí)康翎假面舞和腰鼓,最近每個星期六還要學(xué)習(xí)西道民謠。多勛的姐姐恩智(音譯,初中1年級)也已經(jīng)學(xué)習(xí)了6年韓國國樂。
    “姐姐先學(xué)習(xí)韓國國樂,我是后學(xué)的,但我產(chǎn)生了一定要比姐姐學(xué)得更好的傲氣。腰鼓學(xué)得還不錯,但短簫現(xiàn)在只會吹一點兒。不過在學(xué)校里都說我吹得最好。”
    多勛的康翎假面舞已經(jīng)達到了高水平級別。因此經(jīng)常與大人們一起參加演出。
    多勛也和其他孩子一樣,首先接觸的是西洋音樂。但奇快的是,他對于后來學(xué)習(xí)的韓國國樂更感興趣。
    “韓國國樂與西洋音樂是不同的。透過韓國國樂,能夠感受到我們自己的味道和祥和。最近真的非常喜歡西道民謠。西道民謠既高亢又輕快,與全羅道地區(qū)的民謠也有所不同。”
    ○兒童國樂教育應(yīng)該如何進行?
    專家們強調(diào)說,在幼兒韓國國樂教育上最重要的是讓孩子們自然而然地接受韓國的傳統(tǒng)音樂。
    在5、6歲的時候,以游戲形態(tài)學(xué)習(xí)舞蹈和呼吸、語言和身體的節(jié)奏、國樂童謠等比較好。等過了這個時期,就讓孩子們學(xué)習(xí)小鼓或腰鼓等樂器。
    明知大學(xué)社會教育院教授鄭圣子(音譯,國樂系)表示:“小時候接觸的韓國國樂不是將樂器和舞蹈、民謠等分開來學(xué)習(xí),而是以‘綜合藝術(shù)形態(tài)’一起學(xué)習(xí)比較好。”并稱:“如果接受正規(guī)的韓國國樂教育,與著重于幾件樂器的西洋音樂教育相比,情緒上、音樂上的效果要大得多。”
    初期接觸的韓國國樂樂器最好是選擇小鼓、腰鼓和鼓等打擊樂器。因為打擊樂器是培養(yǎng)節(jié)奏感的最佳選擇。尤其是使用雙手的腰鼓有助于大腦的均衡發(fā)展。
    韓國檀國大學(xué)教授徐漢范(國樂系)表示:“即使不是韓國國樂英才,如果在小學(xué)時期就學(xué)習(xí)板索里(Pansori,一種傳統(tǒng)清唱),音域也會變得寬廣,并且可以矯正不正確的發(fā)音。”并稱:“最重要的是能夠確認自己的根基,并獲得自信心。”
    ○“我們的孩子發(fā)生了改變”
    多勛學(xué)習(xí)的并不只是韓國國樂。
    “以前在吃飯的時候總是到處亂跑??偸浅砸豢陲埦拖?。但現(xiàn)在能夠在一個位置上坐很久,變得很有耐性。”(媽媽具妍智,音譯,45歲)
    孩子在接觸了韓國國樂之后,變得比以前彬彬有禮了很多。具某說:“孩子變得沉穩(wěn),自信心也有所增強。”并稱:“有的時候非常有禮貌,感覺孩子已經(jīng)變得很懂事。”
    生活習(xí)慣也發(fā)生了很多改變??措娨暫屯骐娔X游戲的時間大幅減少,與姐姐一起演奏樂器的時間則大幅增長。喜歡的游戲存入便攜式儲存裝置,偶爾玩一小會兒。
    ○ 民謠不會失傳
    多勛的民謠老師樸某被稱為“為西道民謠癡狂的人”。
    1983年,樸某在軍隊里擔(dān)任炊事兵,在一次為部隊采購糧食來到首爾的時候,在蠶室石村湖聽到了決定他命運的民謠。當(dāng)時他聽到的是平壤券番的最后一代藝妓,也是人類文化遺產(chǎn)的金正淵老師(1987年去世)的愁心歌。
    “聽到一位身高還不到1.50米的老奶奶在唱民謠,當(dāng)時感覺就像是被雷劈到了一樣。從那時起,我的命運已經(jīng)被確定下來。”
    第二年退伍后,樸某直接去拜訪被病魔纏身的金正淵老師學(xué)習(xí)民謠,守護了金正淵老師人生最后一段時光。在嘉禮軒,有專門展示恩師遺物的“錦鴻館”(摘自金正淵老師的藝名)和為以“裴冰兒謠”(音譯)聞名的李殷官(91歲)老先生而設(shè)的房間。
    “民謠嗎?都是我的八字和命運。今年是金正淵老師去世20周年。即使重新回到那個時候,我也同樣會去尋找那個聲音。”
    他的年幼的小弟子唱了“裴冰兒謠”中的一個選段。
    “日落西山的太陽到了明天早上還會再次升起,但黃泉路長得只要走上去就再也回不來呦~”
    西道民謠特有的高音摻入孩子的聲音,響徹小小的空間。不知道只有十一歲的多勛能否理解裴冰兒的“恨”。但是韓國的民謠正這樣代代相傳。